왜 미국에서는 '슈퍼앱'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2 수백조 기업가치의 테크회사들이 하나의 매출원에 의존하는 이유

모두들 즐거운 설연휴 보내고 계신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해 행복한 일만 있으시길 기원드립니다. 첫 글을 내던 시점에 비해 구독자가 늘어나서 더 많은 분들께 메일을 드릴 수 있는 것도 소소한 기쁨이네요. 감사합니다.
실크로드 카멜을 시작한 이유로는 개인적으로 꾸준히 공부를 하기 위함도 있는데요, '매주 월요일'에 메일을 드리겠다 선언하고나니 일상 속에서 컨슈머 테크 관련 주제를 공부하고 정리해보는 패턴이 점점 생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매주 월요일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휴일에도 메일함에 도달한 점 실례하겠습니다. 😄
한 가지! 이 뉴스레터를 통해서는 단순히 소식을 전달드리기보다는 독자분들과 교류하며 같이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큽니다. 저도 제가 전달드리는 이야기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죠 :) 여러분의 의견을 댓글 달아주셔도 좋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적극 반영해보겠습니다. (메일 : design@man-of.com)
오늘은 지난 주 업로드된 CNBC의 영상과, 해당 영상에 출연한 Dan Prud'homme 교수의 2023년 Harvard Business Review 아티클 <Are Super-Apps Coming to the U.S. Market?>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슈퍼앱이 등장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발췌/정리해보겠습니다. 1년이 넘은 아티클이지만 아시아와는 다른 미국 컨슈머 테크 산업의 특성이 잘 담겨있고, 현재 생각해볼 여지들이 많아 가져왔습니다.
왜 갑자기 미국의 슈퍼앱 이야기를 하는가?
틱톡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는 현재 틱톡의 ban-or-sell 이슈가 한창입니다.
틱톡은 모회사가 중국계인 bytedance라는 사실로 인해 미국인의 정보 유출 등의 이유로 미국 상하원 및 트럼프 1기, 바이든 행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24년 하반기 틱톡이 1) bytedance 지분을 중국 국적이 아닌 법인으로 소유권을 넘겨야 하며, 2) 그렇지 않으면 미국에서 영업이 정지되고 미국 내 앱스토어에서 퇴출되는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되었습니다. 바이든이 이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틱톡은 1월 19일까지 주인을 바꾸거나, 영업을 그만두어야 하는 운명을 맞았죠.
틱톡은 매각을 하지 않은 상태로 미국 연방대법원에 해당 법 집행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했으나, 1월 17일 대법원에서 가처분을 기각하면서 미국 내 영업을 중단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틱톡은 1월 19일 법안 발효 시점 3시간을 앞두고 앱을 셧다운 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난 1월 20일 모두가 아시다시피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틱톡은 부활했습니다. 트럼프는 틱톡에게 90일간의 유예를 줌과 동시에 그 기간내 미국(정부나 미국 소재 기업)에 지분의 50%를 넘길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로 인해 앞으로 3개월동안 미국 컨슈머 테크 씬에서는 무려 약 기업가치 $50Bn에 달하는 초대형 M&A 사가가 일어날 예정입니다.

틱톡의 잠재적 인수자로는 트럼프의 최측근 일론 머스크부터 세계 1위 유튜버 미스터 비스트, 또다른 트럼프의 측근인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 가장 핫한 AI 기업 중 하나인 Perplexity AI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틱톡의 가장 큰 경쟁자인 Meta에서는 틱톡 인수전에 참여하기보다는 인재를 뽑아오는 데에 주력하고 있죠.

틱톡이 긁어주고 있는 미국 내 '슈퍼앱 로망'
틱톡 인수에 거물들이 뛰어드는 이유에는 인스타그램을 제친 미국 내 소셜미디어 점유율, Z세대에 대한 압도적 장악력 등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눈에 띈 한 가지 사실이 틱톡이 미국에서 커머스 모델을 꽤나 성공시키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미국에서 만들어진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은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지속적으로 슈퍼앱으로 거듭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머스크는 트위터를 인수한 이후 '위챗(WeChat)과 같이 금융, 메신저, 그리고 다른 다양한 서비스를 한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모든 것의 앱(슈퍼앱, the everything app)'이 되겠다며 트위터의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었으나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틱톡은 슈퍼앱 전략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틱톡은 2023년 중반 미국에서 tiktok shop을 런칭한 이후로 계속적인 성장세를 보여주며 '소셜미디어 + 영상 플랫폼 + 커머스'가 합쳐진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솔직하게 틱톡이 미국의 테크 기업들과 달리 일각의 평가대로 슈퍼앱 전략에 성공했는지는 아직 판단이 서지는 않습니다. 커머스의 규모가 절대적으로 크다고 하기는 어렵고, 기간도 짧기 때문이죠. 이에 대한 판단은 시간이 좀 지난 후에 다시 해볼 수 있을듯 합니다만, 그 전에 현재까지 미국에서 슈퍼앱이 왜 등장하지 않고 있었는지를 미리 살펴봐두는 것은 의미가 있겠습니다.
왜 슈퍼앱은 아시아를 휩쓸었지만, 미국에서는 아닐까?

HBR 아티클 내 일부 내용을 발췌 요약하였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잘사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모두에서 슈퍼앱이 모바일 시대의 컨슈머 소프트웨어 영역을 휩쓸었습니다. 각국의 주요 슈퍼앱은 아래와 같습니다.
- 중국 - WeChat, Alipay, Meiuan
- 인도 - PayTM, Tata Neu
- 인도네시아 - GoTo GoJek
- 베트남 - Zalo
- 말레이시아 - Grab
- 한국 - 카카오톡 (위챗보다 1년 창업이 빠르다!)
- 일본 - 라인 (한국 기반.. 이었다)
왜 미국은 아시아와 어떤 점이 다르길래 아시아 스타일의 슈퍼앱이 성공을 이루지 못하였을까요?
미국과 아시아 테크 기업의 다른 성장 궤도와 시장 포지셔닝
- 테크 회사가 시작된 시점 (Pre vs Post Mobile)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모바일을 기점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PC 중심으로 web-only 서비스를 제공하던 곳들이 많습니다. 검색의 구글, 소셜미디어의 페이스북, 커머스의 아마존 같은 곳들입니다. 이들은 나중에 모바일 앱을 만들었지만 각 앱에서는 제한적인 서비스만 옮겨두는 형태였습니다. 아직도 미국인들 취향에는 맞는 이 방식은 미국 앱 마켓이 파편화된 형태로 생기게 두었습니다.
반면 아시아 테크 기업들은 이미 파편화된 데스크탑 베이스의 비즈니스 위에 올려진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많이 퍼진 이후에 등장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이미 파편화된 서비스 환경에 락인 되어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작부터 슈퍼앱을 만들기에 유리했습니다.
현재 AI 정국에서도 미국에서는 빅테크 기업들이 어마어마한 양의 투자와 함께 다시 헤게모니를 쥘 것이라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한국에서는 과연 모바일 시대를 점유한 기업들이 효과적인 대응을 이어갈지에 대해서는 의심어린 시선을 갖고 있는 분도 많아 보입니다. 카카오가 AI 시대에도 헤게모니를 쥘 수 있을까요?
- 미국 테크 기업의 문화
미국 테크 리더들은 feature bloat (너무 많은 기능으로 앱 사용성이 복잡해지거나 느려지는 현상)을 싫어합니다. 페이스북은 2014년에 의도적으로 메신저를 분리했고, 우버도 우버이츠를 분리해서 운영합니다.
또 어떤 한 앱에 정체성을 담은 개발팀들은 다른 기능의 개발팀과 혼합되면서 정체성에 변경이 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 테크 기업의 광고 기반 모델과 주식 시장의 박한 평가
미국 테크 회사들은 확보된 트래픽을 바탕으로 한 광고에서 대부분의 매출을 발생시키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기능들이 붙으면 광고 매출간의 Cannibalization이 일어날 수 있음을 우려합니다.
또한 미국 주식 시장에서는 '비연관' 다각화에 대해서 안좋은 평가를 하는 경향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 페이먼트 시스템
미국의 신용카드, 직불 카드 중심의 페이먼트 시스템은 핀테크의 적용을 지체시켰습니다. 반면에 아시아 시장은 신용카드와 직불카드가 많이 퍼져있지 않았기에 모바일 페이먼트가 침투할 공간이 충분했습니다. (카드가 활성화되어 있던우리나라는 삼성페이 등 조금 다른 방식이었죠.)
다른 규제 환경 (특히 중국)
중국은 데이터 프라이버시 보호와 반독점법에 대한 제한적인 정부 규제를 기반으로 슈퍼앱이 혜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상대적으로 느슨한 금융 규제 덕분에 위챗페이나 알리페이 지갑에 돈을 넣어두고, 여기서부터 P2P 렌딩 등 파생금융 상품을 만드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또한 주요한 금융 거래 정보를 규제당국에 제출하는 것이 요구되지도 않았습니다. (현재는 규제 변화로 중국에서도 위챗이나 알리가 과거에 했던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중국 정부가 외국의 앱을 더 엄격하게 차단하는 것도 슈퍼앱 성장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주요한 버티컬 서비스별로 잘하는 기업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하나의 기능에서 유의미한 성장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비연관 서비스로 확장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소비자의 문화적 차이
통상적으로 아시아 소비자들은 슈퍼앱을 포함하여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미국인들에 비해 더 우호적인 입장입니다.
아시아 사람들은 하나의 거대 기업이 삶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편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미국인들은 큰 기업을 의심어린 눈으로 보고 프라이버시와 신용에 대해 우려가 많습니다.

그런데 첫번째 댓글에서 욕을 먹고 있는 머스크(X(트위터))나 주커버그(인스타그램, 페이스북)가 아니라, 두 번째 댓글에서 추측할 수 있듯 구글이나 애플은 이미 엄청난 슈퍼 에코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빅테크 중 구글이나 애플은 슈퍼앱 욕망을 밝힌 적이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할까요?
미국에도 슈퍼앱이 등장할까?
미국의 테크 회사들도 명백히 슈퍼앱의 방향으로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미국 바깥의 시장에서는 더욱 명확히 확장하고 있습니다.
- 페이스북 : 페이, 마켓플레이스, 게임, 데이팅, 팟캐스트
- 아마존 : 의료상담, 의약품, 식료품, 콘텐츠 스트리밍
- 스포티파이 : 팟캐스트, 오디오북, 비디오 스트리밍
- 우버 : 대중교통, 여행, 음식배달
- 스냅챗 : 영화 예매, 플래시카드, 명상 기능
그리고 미국에서도 슈퍼앱의 등장을 촉진할만한 환경적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1) 규제적 환경의 변화
데이터 프라이버시 관련 법안의 강화는 제3자 법인으로부터 데이터를 얻는 것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고, 이는 곧 빅테크 기업들이 외주를 주고 있던 다양한 기능을 자체적으로 내재화시킬 유인을 키우고 있습니다.
또 반독점법의 강화는 빅테크 기업들의 M&A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데, 이는 내부적인 투자와 다양한 서비스의 내재화를 이끌 것입니다.
2) 인구의 변화
미국의 어린 세대는 모바일 게이밍, 소셜미디어 등 슈퍼앱의 주요 기능에 더 친화적이며, 빅테크 기업에 대한 적대감도 윗 세대에 비해 적습니다. 또 나이 많은 세대도 테크에 친화적인 정도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3) 앱 오버로드 상태
미국 소비자들은 필요한 기능별로 앱을 굉장히 많이 다운로드를 하는데, 이러한 과적 상태로부터 느끼는 피로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 소비자들도 슈퍼앱을 원하기 시작했습니다.
4) 기술적 변화
지금까지의 슈퍼앱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에코시스템입니다. 하지만 ChatGPT와 같은 새로운 AI 툴들은 우리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콘텐츠를 만들게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습니다. 블록체인과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의 마찰을 줄이고 있습니다.
Takeaway : 미국에서도 슈퍼앱, 한국에서도 다시 슈퍼앱?
사실 저는 미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없다보니 미국 사람들의 감정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틱톡이 미국의 어린 세대 사이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변화를 보면 세대간 차이는 뚜렷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린 세대는 빅테크가 데이터를 가져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심지어 중국기업이 가져가는 것에도 반감이 없죠. 여담이지만 틱톡이 하루 셧다운 했을때 어린 아이들이 911에 전화를 하도 많이 해서 업무에 차질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네요.
소비자 영역에서는 결국 새로운 소비자 군의 사고, 감정, 행동을 따라가야 하기에, 더 젊은 세대를 전제로 하였을때의 컨슈머 테크 영역의 기회는 슈퍼앱과 같은 새로운 모델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티클을 읽으면서 흥미롭게 느낀 지점은, 미국에서 슈퍼앱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이유로 1) 기존 테크회사들이 새로운 기술 흐름에서 주도권을 다시 쥐고, 2) 작은 버티컬 기회들은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잡고 있어 하나의 앱이 슈퍼앱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한 '경쟁강도'에 대한 지점인데요. 한국으로 이 생각을 치환해보면 새로운 기술적 변화가 있을때 기존 테크 회사들이, 혹은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만들어지는 모든 기회들을 장악하는 흐름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습니다.
결국 New comer들을 위한 공간 여유의 차이가 (상대적으로 전체 시장은 작지만) 횡적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는 듯 보이기도 하네요. 이로 인해 다음 기술 변화 트렌드에서도 한국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또 다른 슈퍼앱이 등장할 여지도 꽤 있어보입니다. 어떤 스타트업이 모바일 시대 카카오가 차지한 자리를 획득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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